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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소유된 것의 소중함, The Preciousness of Christ’s Own
설교자: 오수강 목사, Pastor Richard Oh
본문: 골로새서 4:14, Colossians 4:14
날짜: 2024-04-28

그리스도의 소유된 것의 소중함

 

골로새서 4:14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계속해서 골로새서 강해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골로새서 4장 14절 후반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대로 지난 몇 주일 동안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사역하는 동역자들에게 문안을 전하는 골로새서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로 두기고, 오네시모,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에바브라, 누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그리스도의 종들의 삶을 통하여 성경에서 얻을 수 있는 믿음과 성화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소개한 다음 인물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데마입니다. 데마는 누구입니까?

데마는 신약성경에 세 번 언급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특별한 설명이나 칭찬 없이 데마를 언급합니다. 그러나 성경 다른 곳에서는 바울이 데마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 중 한 사람으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빌1:23-24)

 

데마 또한 바울과 함께 마가, 아리스다르고, 누가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했습니다. 이것은 데마가  복음을 전파하고 말과 모범으로 그리스도의 나라의 길을 가르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급된 다른 사람들처럼 데마는 분명히 복음 사역에 있어서 바울이 신뢰하는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데마에 관해 말하는 내용은 놀라운 일일 수 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4:9-11)

 

지난 주일에 우리가 상기한 바와 같이, 바울은 로마에서 두 번째 투옥 중에 디모데후서를 썼습니다. 기억하시는 것처럼 이 두 번째 투옥은 로마에서의 첫 번째 투옥보다 더 가혹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투옥은 가택연금이었으며 그곳에서 그는 상당한 자유를 누렸습니다. 두 번째 투옥에서 바울은 중범죄자로 결박되어 감금되었으며(딤후 2:9) 로마 당국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메르틴 감옥으로 알려진 곳에서 로마의 마지막 투옥을 겪었다고 전해집니다. 원래 저수조였던 마메르틴은 이후 감옥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저수조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사도 바울이 그 어둡고 추운 곳에서 혹독한 환경을 인내했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투옥을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수많은 교회와 지도자들이 바울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사실이었고, 이는 확실히 바울의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바울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에서 바울은 투옥된 사도를 찾아 그의 필요를 섬기기 위해 로마에 온 오네시보로를 칭찬합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딤후1:16-18)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찾아 나서면서 바울이 매여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적 전통에 따르면, 바울은 네로 황제의 교회 박해 중에 순교했습니다. 네로는 로마 대화재에서 자신을 면책하기 위해 그 재앙에 대한 책임을 그 당시 이미 로마 사회에서 널리 멸시받고 있던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그 결과 교회에 대한 폭력적인 박해가 일어나 수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로마 국가에 의해 투옥된 교회의 지도자들은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결박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같은 죄수와 연합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용기를 가지고 고립된 사도를 자주 방문했고 그에게 필요했던 양식과 교제를 통해 그에게 새 힘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가 자신을 섬긴 일을 과거형으로 언급하는데, 이는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썼을 때 더 이상 바울 곁에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일부 주석가들은 디모데후서 1장에서 바울이 오네시보로가 아닌 오네시보로의 집안을 축복하고, 디모데후서 말미에서는 자신이 아닌 그의 가족에게 문안한 사실을 이후 오네시보로가 죽었다는 증거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부재의 이유가 무엇이든, 바울은 비참한 감옥 생활 속에서도 오네시보로가 보여준 용기와 친절을 애정을 가지고 기억합니다.

 

여기서 오네시보로의 신실함과 대조되는 것은 바로 데마가 바울을 버린 사실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느니라.” (딤후 4:10) 원어에서 버림받은 사람을 뜻하는 단어는 에그카탈레이포입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다”를 의미합니다(Tayer의 그리스어 사전). 바울은 한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동역하며 신뢰했던 동역자가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한때 오네시보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데마는 바울을 궁지에 몰아넣고 현대 그리스에 위치한 데살로니가로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데마는 왜 바울을 버렸습니까? 왜냐하면 그는 이 현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강한 단어입니다. 단순히 자기 보호 본능을 지칭하기에는 너무 강한 단어입니다. 데마는 이 현 세상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데마는 세상의 보물들, 즉 부, 소유, 명성, 세상이 제공하는 방대한 쾌락, 안락, 오락, 인간의 다양한 정욕에 매료되어 바울과 함께 하는 그의 사역에서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데마는 물질주의적인 삶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갈망을 추구하기 위해 큰 고난의 시기에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라는 도시로 떠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데마가 바울을 버린 실제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그가 바울을 사랑한 것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데마가 그의 형제 바울을 사랑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배신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명령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5:1-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이는 주님 자신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대중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집으로 입양될 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구원 사역은 오직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때에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로 입양됩니다. 우리는 동료 신자들을 볼 때 무엇보다도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여기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동료 형제들이 더욱 소중한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참되고 지속적인 믿음으로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 그분의 영이 임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소유임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인치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골로새서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심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영접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처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데마는 이 세상과 그 모든 보물을 사랑하여 그에게 소중한 것을 찾으러 데살로니가로 떠났습니다. 그는 로마의 어둡고 축축한 지하 감옥에 참된 보물, 세상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형제였으나 하나님과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사랑받고 보배로운 형제였던 바울을 버려두고 갔습니다. 우리들 또한 우리 형제들을 같은 시각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그들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심지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면,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온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의 아들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6장 37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쫓아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 17:8) 우리 주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누가 주님에게 오는 사람들입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에베소서 1장 3-5절과 같은 기념비적인 말씀에서 분명해집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3-5)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께로 향하는 이유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은 무엇입니까? 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분의 아들 안에서 구원을 받도록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우주가 창조되기 전, 영원부터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서 자기를 위하여 한 백성을 택하시고, 자기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근거는 그들이 언젠가는 하나님의 복음을 믿을 것이라고 예견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에베소서 1장 4절의 결론에서 읽을 수 있듯이 그분은 그들을 영원 전부터 자신의 소유로 미리 아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사랑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로마서 8장 29절에서도 같은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롬 8:29) 성경적 의미에서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관한 사실을 아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심판 날에 그분을 따른다고 주장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3)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이 거짓 추종자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친밀하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로 결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만이 주님과 친밀하며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10:14)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양을 안다고 말씀하실 때, 여기서 그분은 그들과 사랑의 친밀함이라는 특별한 유대를 공유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 하나님이 그 분의 아들 안에서 구원을 얻기로 예정하신 자들을 미리 아셨다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아들 안에서 구원을 얻기로 예정하신 자들 곧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관심의 대상인 자들을 미리 아셨다는 것을 읽습니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4-5) 아버지께서는 이 사람들만 자기 아들의 백성으로 주셨습니다. 이들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새 마음을 받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올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쫓아내지 아니하리라.” (요 6:37) 오직 이들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나님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주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13:48)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아들에게 드릴 백성으로 선택하셨을까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 왜 우리들입니까? 이것은 미스터리이며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은혜로운 사랑이며 분에 넘치는 과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R.C. 스프로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궁극적인 축복은 아들에게 주시는 그분의 선물이 되는 축복입니다.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 사람들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도록 예정된 자들입니다.” (R.C. Sproul, 마태복음) 오늘날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들에게 주셨고, 이는 우리 죄에서 구원을 받고 정결하게 되어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딛 2:14). 우리 동료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선물이고, 그리스도께서 그들 각자 안에 거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볼 때, 그리스도를 진실로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그분의 귀중한 보석이라고 부르는 이 찬송은 얼마나 적절합니까?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귀중한 보배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찾으시리

 

샛별같은 그 보배

면류관에 달려 

반짝 반짝 빛나게

비치리로다

 

정한 보배 빛난 보배

 주 예수의 보배 

하늘나라 두시려고 

다 거두시리

 

주를 사랑하는 아이

이 세상에 살 때

 주의 말씀 순종하면 

참 보배로다 (보배, 윌리암 커싱)

 

형제 여러분, 이 세상의 이기적인 일에 너무 몰두하므로 우리에게 쉼을 구하는 형제들을 저버리는 데마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소유된 백성이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을 경멸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가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 곧 그 분의 형제에게 한 것이 그 분에게 한 것이다(마 25: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 보시기에 믿는 자들이 얼마나 귀한지 보시고, 오네시보로가 고난 받는 바울을 자주 위로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고난 받는 형제들을 자주 위로해 줍시다. 지난주에 우리 형제 누가의 모범을 통해 배운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외면하더라도 우리 주변의 형제들 곁에 충실하게 머물면서 사랑으로 그들을 섬깁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현 세상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보다 훨씬 더 진귀하며 오래 지속되는 보물을 내세에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The Preciousness of Christ’s Own

 

Colossians 4:14

 

14 Luke the beloved physician greets you, as does Demas. 

 

I would like to remind everyone that we are continuing with our series in Colossians picking up where we left off last week in the fourth chapter of this epistle, moving on to the second half of verse 14. 

 

If you recall, over the past several Sundays, we have been going through the final section of Colossians where the apostle Paul conveys the greetings of his fellow workers in ministry to the church at Colossae. So far, since beginning our study of this section, we have been introduced to Tychicus, Onesimus, Aristarchus, Mark, Justus, Epaphras, and Luke. And from what we could derive from scripture concerning these lesser-known servants of Christ, we have learned valuable lessons for our faith and sanctification. Today, we will be considering the next individual introduced by Paul in this section and that individual is Demas. Who is Demas? 

 

Demas is mentioned three times in the New Testament. In today's text, Paul refers to Demas without any specific description or commendation. But elsewhere, Paul refers to Demas as one of his fellow workers for the kingdom of God: 

 

23 Epaphras, my fellow prisoner in Christ Jesus, sends greetings to you, 24 and so do Mark, Aristarchus, Demas, and Luke, my fellow workers. (Philemon 1:24) 

 

Like Mark, Aristarchus, and Luke, Demas worked alongside Paul for the kingdom of God. This means Demas probably preached the gospel and taught the ways of Christ's kingdom in both word and example. Like these other men mentioned, Demas was apparently Paul's trusted co-laborer in the ministry of the gospel. So, what Paul has to say about Demas in his second letter to Timothy may come as a surprise.

 

9 Do your best to come to me soon. 10 For Demas, in love with this present world, has deserted me and gone to Thessalonica. Crescens has gone to Galatia, Titus to Dalmatia. 11 Luke alone is with me. (2 Timothy 4:9-11) 

 

As we were reminded last Sunday, Paul wrote 2 Timothy during his second imprisonment in Rome. If you remember, the conditions of this second imprisonment were more harsh than his first imprisonment in Rome. His first imprisonment was a house arrest where he enjoyed significant liberties. In his second imprisonment, Paul was bound and confined as a serious criminal (2 Timothy 2:9) and facing the prospect of death at the hands of the Roman state. It is believed that the apostle Paul suffered his final Roman imprisonment in what is known as the Mamertine prison. Originally a cistern, the Mamertine was then converted into a prison. Tourists who descend into the cistern today can attest to the harsh conditions endured by the apostle Paul in that dark, cold place. 

 

Adding to the misery of Paul's imprisonment, was the fact that a large swathe of churches and their leaders had cut ties with Paul, an act that surely intensified Paul's suffering. But not all had forsaken Paul. In the first chapter of 2 Timothy, Paul commends Onesiphorus, who had come to Rome to find the imprisoned apostle and minister to his needs: 

 

16 May the Lord grant mercy to the household of Onesiphorus, for he often refreshed me and was not ashamed of my chains, 17 but when he arrived in Rome he searched for me earnestly and found me— 18 may the Lord grant him to find mercy from the Lord on that day!—and you well know all the service he rendered at Ephesus. (2 Timothy 1:16-18) 

 

In seeking him out, Onesiphorus was not ashamed of Paul's chains. According to historical tradition of the early church, Paul was martyred during Emperor Nero's persecution of the church. In an effort to exonerate himself from the Great Fire of Rome, Nero pinned the blame for the catastrophe on the Christians, who were already by that time, widely despised in Roman society. As a result, violent persecution broke out against the church and lasted for several years. It was a dangerous time to be a Christian let alone a leader of the church imprisoned by the Roman state. Many in the church were ashamed of Paul's chains. They were afraid to be associated with a prisoner like Paul. But Onesiphorus was not afraid. In a display of courage, he visited the isolated apostle often and refreshed him with much needed sustenance and fellowship. Paul refers to Onesiphorus's service to him in the past tense which means by the time Paul penned 2 Timothy, he was no longer at Paul's side. Some commentators consider the fact that Paul blesses the household of Onesiphorus rather than him directly here in the beginning of 2 Timothy and greets his family rather than him at the end of 2 Timothy as evidence that Onesiphorus has since died. Whatever the reason may be for his absence, Paul remembers fondly the courage and kindness of Onesiphorus from the misery of his prison. 

 

In contrast to the Onesiphorus's faithfulness was Demas' desertion. “For Demas, in love with this present world, has deserted me and gone to Thessalonica.” (2 Timothy 4:10) In the original language, the word for deserted is egkataleipó. It means to “leave in the lurch” (Thayer's Greek Lexicon). It appears that Paul expected his once trusted co-worker for God's Kingdom to be of help to him in his imprisonment, perhaps in the same way Onesiphorus once did. But instead, Demas decided to leave Paul in the lurch and departed for Thessalonica, located in modern day Greece. Why did Demas desert Paul? Because he was in love with this present world. The word “love” is a strong word – a word too strong, in my opinion, to refer merely to the instinct of self-preservation. Demas fell in love with this present world. I think Demas was enthralled by the world's treasures – wealth, possessions, fame, its vast offerings of pleasures, comforts, and entertainment, its appeal to the variety of human passions – and was lured away by them from his ministry at Paul's side. I think Demas deserted his brother in his time of great suffering in order to pursue his self-centered craving for a materialistic life far away in the city of Thessalonica. Whatever the actual reason Demas deserted Paul, we know that he did so because he loved this present world more than he loved Paul. 

 

As we consider Demas' unloving, selfish betrayal of his brother, Paul, we are reminded of our Lord's command to His church: 

 

1 Therefore be imitators of God, as beloved children. 2 And walk in love, as Christ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 fragrant offering and sacrifice to God. (Ephesians 5:1-2) 

 

Christ loved His people and gave Himself up for them so that through Him, we might become God's beloved children. Contrary to popular sentiment, we are not all God's children. We only become God's children when we are adopted into His household through the saving work of Jesus Christ – a saving work which can only be appropriated through faith in Him. It is then and only then that we are reconciled to God and we are adopted by Him as His own beloved children. When we look upon our fellow believers, do we regard them, first and foremost, as God's beloved children? To add to the preciousness of our fellow brethren in Christ is the fact that Christ Jesus dwells in all who trust in Him with true, enduring faith. The presence of His Spirit in us is God's seal on us, authenticating us as His own. That is why earlier in Colossians, we were assured that Christ in us is the hope of glory. “To them God chose to make known how great among the Gentiles are the riches of the glory of this mystery, which is Christ in you, the hope of glory.” (Colossians 1:27) When we consider those who have received Christ Jesus the Lord, do we recognize them not only as God's beloved but also as the very dwelling place of Christ? 

 

Demas loved this present world with all of its treasures and went off to Thessalonica to find what was precious to him. He left behind in a dark, dank dungeon in Rome true treasure: a brother who was an outcast in the eyes of the world but beloved and precious to God and the dwelling place of Christ our Lord. Do we remember to always regard our brothers in the same light? Or are we prone to take them for granted or even look down on them? If we believe the gospel, we know that salvation is God's gift to us that is received by faith in Christ. But do we know that the reason we have come to Christ in faith is because God the Father first gave us as a gift to His Son. We read in John 6:37, “All that the Father gives me will come to me, and whoever comes to me I will never cast out.” Or again in Jesus' high priestly prayer, “I have manifested your name to the people whom you gave me out of the world. Yours they were, and you gave them to me, and they have kept your word.” (John 17:8) Who, according to Jesus our Lord, will come to Him? “All that the Father gives me will come to me...” What this statement means is clarified in a monumental passage like Ephesians 1:3-5: 

 

3 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in Christ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the heavenly places, 4 even as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that we should be holy and blameless before him. In love 5 he predestined us for adoption to himself as sons through Jesus Christ, (Ephesians 1:3-5) 

 

What is the ultimate explanation as to why anyone turns to Christ Jesus for salvation? The answer is this: God chose them for salvation in His Son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Before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from all eternity, God chose a people for Himself from out of the world and predestined them to become His children through faith in His Son. And the basis for His choice was not because He foresaw that they would one day believe His gospel but because, as we read at the conclusion of verse 4, He foreknew them as His own from eternity past and set His everlasting love on them. “In love he predestined us for adoption to himself as sons through Jesus Christ,” (Ephesians 1:4-5) We read the same thing in Romans 8:29 where it is written, “For those whom he foreknew he also predestined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Romans 8:29) To be known by God, in the biblical sense, means much more than God knowing facts about us. In His omniscience God knows everything about everyone. Yet, the Lord tells us that on the day of judgment, He will say to many who claimed to follow Him and who did many works in His name, “I never knew you; depart from me, you workers of lawlessness.” (Matthew 7:23) By saying He never knew these false followers of His, Christ Jesus is saying He never knew them in intimate, loving relationship - the likes of which He enjoys with those who truly trust in Him: 

 

14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own and my own know me, (John 10:14) 

 

When Christ tells us He knows His own sheep, He is saying that He shares a special bond of loving intimacy with them. When we read in Romans 8:29 that God foreknew those He predestined for salvation in His Son, we are reading that it is those who were the objects of God’s loving concern from all eternity whom He predestined for salvation in His Son. “In love he predestined us for adoption to himself as sons through Jesus Christ,” (Ephesians 1:4-5) These and these only the Father has given as a people for His Son. These and these only will receive a new heart from God that they may hear the gospel and come to Christ in faith. “All that the Father gives me will come to me, and whoever comes to me I will never cast out.” (John 6:37) These and these only have been appointed by God to eternal life. “And when the Gentiles heard this, they began rejoicing and glorifying the word of the Lord, and as many as were appointed to eternal life believed.” (Acts 13:48) Why would God love any of us like this and choose us as a people to give to His Son? Why us particularly outs of all the people of the world? This is a mystery. I don't know. I do know this is a gracious love, an unmerited love. And so, we read in the words of R.C. Sproul, “The ultimate blessing the Father gives to any human being is the blessing of being His gift to the Son. . .These individuals whom the Father gave to the Son have been predestined to inherit the kingdom of God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R.C. Sproul, Matthew) If we truly trust in Christ Jesus today, we have been given by the Father to the Son to be saved from our sins and to be purified as a people for His own possession (Titus 2:14). Seeing that our fellow believers are God's gift to Christ, that Christ dwells within each of them, and that they are God's beloved children, how appropriate is that hymn which calls all who truly trust in Christ His precious jewels: 

 

When He cometh, when He cometh

To make up His jewels,

All His jewels, precious jewels,

His loved and His own:

Refrain:

Like the stars of the morning,

His bright crown adorning,

They shall shine in their beauty,

Bright gems for His crown.

 

He will gather, He will gather

The gems for His kingdom;

All the pure ones, all the bright ones,

His loved and His own. 

 

Little children, little children,

Who love their Redeemer,

Are the jewels, precious jewels,

His loved and His own. (Jewels, William Cushing) 

 

Brethren, let us make sure we are no Demas, deserting our brothers who look to us for refreshment because we have become all too engrossed with the selfish pursuits of this present world. Scorn not Christ's own possession and God's beloved children! Christ Jesus tells us that what we do to one of the least of these, His brothers, we do to Him (Matthew 25:40). Seeing how precious believers are in the eyes of our Lord and God, let us often refresh our suffering brothers, as Onesiphorus often refreshed suffering Paul. Let us, as we learned last week from the example of our brother Luke, remain faithfully by the side of our brothers around us, serving them in love even while so many have turned away from them. If we do, we can be sure that we will be richly rewarded for it in the world to come with lasting treasures far greater than the best this present world has to offer!